작성일
2018.06.11
수정일
2018.06.11
작성자
일본학과
조회수
503

백영숙 남김말

<백영숙 남김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떠나오기 전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어서 글을 쓰려 하였으나, 시간이 여유치 못하여 이제야 쓰게 되었습니다.
  아버니, 그리고 오빠, 언니들 형부들!
  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정성기울여 주시고 여전히 걱정하여 주심 감사드립니다.
  이곳 공기 좋고, 사람들 좋은 곳에 온지도 벌써 나흘째 되었습니다. 처음 떠나올 때는 사실 포기하는 심정이었습니다. 내입으로 가겠다고 한 약속을 다시 번복할 용기도 없었고, 어차피 다른 맘 먹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지체 아들이나 돌보며 그냥 살다보면 절망스러웠던,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제 삶이 위로라도 받을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는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오신 날 무심결에 내뱉으신 그 말씀이 정말로 내겐 왜 죽을 용기조차도 없을까 자신이 원망스럽고, 무기력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 날부터 나 혼자 어떻게든 살아볼 궁리를 했습니다.
  처음은 이런 곳보다는 서울 어느 한구석에 몰래 도망가서 숨어서 단 몇달이라도 열심히 일하다 쓰러지면 그만이지 하는 결심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고통과 짐만 되고 있는 자신이 무능력해서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의 어느 모르는 구석에서, 친구들도, 형제도, 부모도 다 잊어버리고 나를 전혀 모르는 곳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 속에 끼여 살다가 그냥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초라할 수 없었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목숨을 끊을만큼 독하지 못한 못난이였답니다. 병원에서 혼자 있으면서, 서울에서 방황할 때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몇 번 자살 충동을 느끼다가도 용기를 내지 못했던 심정을 건강한 사람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의 현실이었답니다.
  이곳에 올 것을 결정한 것도 3~4개월 마음이나 정돈하겠다고 말은 쉽게 했지만, 나름대로는 큰 모험같은 것이었답니다. 왜냐하면, 약을 먹어도 차오르는 숨, 혈압이 단 일주일만 약을 먹지 않으면 계단 세개를 제대로 오를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두통, 구토에 시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약은 먹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약을 먹지 않아 지하철에서 두 번 숨을 쉴 수 없는 심장마비 상태를 일으킨 적이 있었답니다.
  4월 30일, 두 번째 병원에 입원하면서 나름의 의도는 병원에서 혈압이라도 낮추고 나면 퇴원해서 서울로 도망가든, 이곳으로 오든 하겠다는 결심이었지만, 당시는 퇴원하여 틈을 봐서 서울로 몰래 편지 한 장 남기고 숨어버려야지 하는 쪽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혼자 쓸쓸히 고통스러워 할 그 상황이 생각할수록 자꾸 자신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곳에 오면 몸이 뒤틀리면서도 살아있는 지체아들이나 돌보며 삶의 위로를 얻고, 그렇게 하다 아프면 고상하게 갈 수도 있겠다 싶어졌습니다. 형제, 부모 또 다른 그 누군가의 어느 한 부분을 받으면서까지 고생시키고, 돈 없애고 그렇게 구차하게까지하여 살고 싶은 맘이 전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병원 생활이 제겐 지긋지긋한 생활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이 생각은 지금도 확고해 변함이 없습니다.) 게다가, 날마다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퍼져있을 수 밖에 없는, 계단 하나 오르는데 숨을 헐떡거리는 자신의 건강상태가 지겨웠습니다. 그래서, 미친듯이 그런 몸으로 서울도 다녀보고, 소리도 질러보곤 했답니다.
  2~3개월, 아니면 1년 정도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제게 조금만 참아보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그것은 약을 먹어도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혈압으로 인한 두통, 구토, 약 때문인지 밤늦도록 속이 쓰려 잠못이루는 밤, 밥 한숫갈만 더 먹어도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토해내야 하는 고통, (그래서 먹고 싶어도 두려워 제대로 먹지못하는 고통, 옆에서 보면 하잘 것 없는 듯한, 아니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집에서 쉬고만 있는 줄 아는 그런 모습)이 얼마나 지겨운지 몰라서였을 거예요. 차라리, 차라리 암이라면 통증이 올 때 미치게 고통스럽다가 통증이 멈추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아픔을 잊을 수 있지만, 하루종일 무기력하게 퍼져 있어야 하고, 조금만 걸어도 숨차며 피곤해서 아무데나 주저않고 싶은 이 놈의 병은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하는 좌절을 정신적으로 더욱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건강하여 임신하고, 결혼해 행복해 하는 주변 친구들, 석박사 학위들을 눈앞에 두고 공부하는 친구들.
  그들을 접하면서 그냥 태연할 수 있을 만큼 바보스럽지 못하고, 욕심없이 멍청하게만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약을 먹지 않아 혈압으로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숨이 차 오르더라도...... 하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이곳으로 올 것을 결심했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얘기했지만, 병을 고쳐서 다시 새 삶을 살아야지 라는 기대보다는 좋은 일로 고상하게 빨리 눈감고 편해지자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런데, 떠나오기 전날밤 이곳으로 오길 권유했던 3층 상희엄마 말씀이 "환자는 지체아를 돌보거나 할 여유가, 기화가 전혀 없을 것"이라는 말에 완전히 기분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몹시 실망했다고 할까요. 난 살기 위해, 병을 고치기 위해서 사실을 가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드니 다 챙ㅇ겨놓은 상태에서 또다시 못가겠다는 말도 못하게쏙, 그래서 그날밤 그렇게 화가 나 있었답니다. 와서보니, 상희엄마 말이 사실이더군요. 하루 종일 예배나 드리고, 기도나 하라고 다들 그러는 것이었어요. 병원에서도 환자 취급당하는게 싫었는데 결국 여기서도 환자로 밖에 있을 수 없나. 내 의도와 전혀 달라진 새로운 이곳 생활도 싫었고, 다시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기도, 예배의 소극적인 방법으로 병 낫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지요. 그렇다고 옆에 있는 엄마가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나흘째. 금요일이군요. 어젯밤부터 나보다 심한 환자들만 보면서, 또, 식물인간이 자신이었다며 엠블런스에 실려왔노라며 씩씩하게 살아있는 어떤 사람, 수없이 고쳐진 암환자들, 죽을 병을 가지고도 활짝 웃으며 "감사,감사"하는 이들을 대하면서 그래 나도 고쳐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다시 건강해져 볼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가 생깁니다. 스스로의 입으로 증거하는 죽음직전의 그들의 이야기들이, 그 수많은 고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 거짓말이겠거니 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을만큼 살아있는 증언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맘을 고쳐 먹고나니, 주변의 기도가 간절히 필요합니다.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한마디의 기도, 가정의 믿음이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아직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 어려우시겠지만, 저를 위해 다시한번 용기와 정성을 보여주십시오. 만일, 내가 수술했다면, 3개월 이상은 입원해 있었어야 했고, 입원비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며, 그 수술의 성공여부도 불확실했을터입니다. 무엇보다 수술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입원비 대신 가족이 합심하여 기도로 저를 지원해 주십시오.
  가까운 교회가서 하면 좋고, 안되면 집에서 조용한 가운데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입원한 병원에 방문하는 시간이라 생각하시고 온가족이 하루 30분씩만 날마다 같은시간 (밤 10시면 가장 좋겠습니다)에 기도 좀 해주세요.
  [주기도문]만 30분 외워도 아주 좋은 기도입니다. 그리고, 가서 졸거나, 30분만 있어도 좋으니 주일(일요일)은 꼭 온가족이 교회에 나가 주세요.
  이 두 가지만 가족들이 결단해 주시면 제겐 매우 큰 힘이 될것 같습니다. 이젠 간절히 건강해지고 싶습니다. 저의 간절한 소망이니 저의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하신다면 어리석은 방법같이 생각되더라도 한 귀로 드도 한 귀로 흘리지 마시고 꼭 좀 지켜주세요. 내가 속한 교회의 교우님들의 기도기원을 받으면 좋겠지만 속한 교회도 없고하여 절대적으로 저는 가족들의 기도와 믿음에 대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다른 환자들은 옆에서 부모가, 자식이 기도해 주지만, 아직은 난 엄마를 위해 오히려 환자인 내가 기도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렵습니다. 이제부턴 감사하며, 기도하며, 이곳에서 생활하겠습니다. 엄마라도 오늘부터 성경공부로, 찬송연습도 하며 웃으며 잘 지냅니다.
  먼저, 자신들에 대한 회개의 심정을 가지시고, 나의 혈압이 오르지 않도록 두통도, 구토도 없도록, 심장이 숨이 헉헉거리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주십니오. 엄마의 믿음이 생기고, 고혈압도 고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마지막까지 이렇게 욕심부려 나를 위해 노력하고, 교회가는 것, 기도하는 것 쑥쓰러우실텐데 부탁드려 죄송합니다만, 살아날 방법이 이것 하나 뿐이라고 믿으시고 기도 지원해 주십시오. 혹시라도 저를 병원에 데려갈 생각 절대 마시고, 하나님께 믿고 맡겨 기도만 해 보세요. 때로는 지금까지 보았던 것보다 제가 더욱 심하게 아플 때도 있고, 마음도 정반대로 미움이 생기고, 제가 화를 낼 때가 있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럴 수록 염려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있다고 믿고 무조건 맡기고 기도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다 풀릴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아주 최악의 순간이 오더라도 내게 아주 나쁜 일이 있더라도 원망하거나 의심하지 마세요. 어차피 이 곳으로 결심하면서 나는 확실한 결단을 한 상태였으니까요. 여기 오지 않았다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몰래 서울로 도망가서 숨어서 살았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감사할 줄도 모르고, 이렇게 평온한 마음도 같지 못한 채 비참하게 살다가 스스로 지쳐 뭔가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 이런 최악의 상태는 아마 없을 것 같은 좋은 느낌입니다. 건강상태도 집에서보다 양호한 편이고, 먹는 것도 잘 먹어도 소화도 잘 됩니다.
  꼭, 기도해 주세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교회도 꼭 다녀주세요.

94년 5월 신록이 아름다운 날.
형제들의 정성과 관심에 감사하며 우리 온가족의 기도의 위력을 체험하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막내가 드립니다.

p.s. : 이 편지는 복사해서 한 부씩 보관하시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평강이 가정에 항상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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